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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쇼 선택은 텍사스 아닌 다저스였다

 

▲ 다저스와 1+1년 계약에 합의하며 종신 프랜차이즈의 길을 걷게 된 클레이튼 커쇼

 

 

클레이튼 커쇼(36) 루머에서 다시 한 번 애꿎은 패배자가 된 텍사스가 선발 로테이션 보강을 계속 노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선발 보강에 실패했지만, 이제는 이 문제를 더 늦출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몇몇 선수들이 후보자로 나선 가운데, 현지 언론은 류현진(37)의 이름을 주목하고 있다. 현재 텍사스 사정에 딱 어울리는 선수 중 하나라는 평가인데, 뜯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미 스포츠전문매체 '스포츠키다'는 8일(한국시간) 다저스와 클레이튼 커쇼의 재계약 소식을 알리면서 '이제 월드시리즈 챔피언은 부상으로 가득 찬 선발 로테이션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곳을 살펴야 한다'면서 '텍사스 레인저스에는 운이 좋게도 그들이 클레이튼 커쇼를 대체할 수 있는 자유계약선수 시장과 트레이드 시장에 남아 있는 선발 투수들이 있다'고 후보자 세 명을 제시했다.

이 매체는 조던 몽고메리(FA), 딜런 시즈(시카고 화이트삭스), 그리고 류현진을 후보로 뽑았다. '스포츠키다'는 류현진에 대해 '텍사스는 이번 시즌 단기 계약으로 류현진 영입을 생각할 수 있다. 2022년 토미존 수술(팔꿈치인대재건수술)을 받은 36세의 좌완 투수는 모국인 한국에서 정상적인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시즌 류현진은 토론토의 로테이션에 복귀해 52이닝을 던지며 3승3패 평균자책점 3.46, 38탈삼진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은 아직 계약을 마치지 못한 FA 시장의 대표적인 투수다. 적지 않은 나이, 2022년 팔꿈치 수술 후 아직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점 탓에 시장의 S급 투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모든 팀들이 S급 투수를 원하는 건 아니다. 자신들의 예산에 맞게, 그리고 자신들의 장기적 구상에 맞을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 많은 돈을 쓰기는 어렵지만 선발 로테이션의 3~5선발을 보강해야 하는 팀들, 혹은 리빌딩 과정에 있어 장기적인 구상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당장의 선발 로테이션을 메울 수 있는 투수를 찾는 팀들에게는 류현진이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많은 선수들이 계약을 한 현시점에서 류현진은 최대어인 블레이크 스넬, 조던 몽고메리 바로 다음의 선수로 평가되고 있다. 류현진과 현재 비슷한 레벨로 엮이는 투수는 마이크 클레빈저, 마이클 로렌젠이 있다. 그런데 이들 중 류현진이 유일한 좌완이다. 통계전문사이트 '팬그래프'가 예상한 2024년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를 기준으로, 현재 시장에 남은 선발 투수 중 2024년 예상 WAR이 가장 높은 선수는 블레이크 스넬로 3.3이며, 조던 몽고메리가 3.2로 그 뒤를 따른다. 그 다음이 1.8의 류현진이며, 그 다음이 1.7의 클레이튼 커쇼, 1.6의 제이콥 주니스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커쇼와 주니스는 7일 나란히 계약에 골인했다.

그렇다면 텍사스 매체는 왜 류현진에 주목하는 것이고, 커쇼와 텍사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는 텍사스와 커쇼의 연계 역사, 그리고 텍사스의 현재 로테이션 사정을 살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고향팀과 끊임없이 엮었던 커쇼, 이번에도 선택은 다저스였다

한때 지구상 최고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클레이튼 커쇼(36‧LA 다저스)는 다저스의 상징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또 팬들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200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팀의 1라운드 지명을 받은 뒤 무럭무럭 자라 팀의 에이스 자리까지 순탄하게 올랐고, 리그 최고의 투수로 다저스의 숱한 영광을 함께했다.

커쇼는 2011년 33경기에서 21승5패 평균자책점 2.28을 기록하며 생애 첫 평균자책점 타이틀과 사이영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2013년과 2014년 내리 사이영상을 따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2014년에는 27경기에서 198⅓이닝을 던지며 21승3패 평균자책점 1.77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사이영상과 리그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하기도 했다.

자연히 몸값도 최고였다. 다저스는 커쇼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가기 전 엄청난 금액으로 그를 눌러 앉혔다. 2014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7년 총액 2억1500만 달러의 계약을 제안해 연장 계약에 성공했다. 이 계약이 끝나갈 때쯤이 되자 또 연장 계약으로 그가 FA 시장에 나가는 것을 막았다. 커쇼는 2019년 시즌을 앞두고 다저스와 3년 총액 930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연 평균 3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이었다. 최고 투수,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해줄 수 있는 대접을 다 했다.

그런데 이 시점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루머가 바로 커쇼의 텍사스행 루머였다. 커쇼는 고향이 텍사스주고, 댈러스의 하이랜드 파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커쇼가 언젠가는 고향팀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루머가 파다하게 퍼졌다. 커쇼도, 텍사스도 이를 공식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럴 법한 루머였다. 고향팀으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은 일부 경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었고, 자금력이 풍부한 텍사스는 커쇼를 품에 안을 만한 돈을 쓸 수 있었다.

이 루머는 거의 매년 양산됐다. 커쇼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를 커버하는 3년 계약이 끝나자 그 후로는 매년 단년 계약을 했다. 2022년은 1700만 달러, 2023년은 2000만 달러에 각각 1년 계약씩을 했다. 자꾸 FA 시장에 나가는 그림이 됐기에 자연히 텍사스행 루머는 끊이지 않고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이다. 2024년 시즌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FA 신분이 됐고, 이제 현역이 얼마 남지 않은 커쇼가 이번에는 진짜 고향팀으로 향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이도 없던 일이 됐다. 커쇼의 선택은 다시 다저스였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 등 현지 언론들은 7일(한국시간) 커쇼가 다저스와 계약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최근 팀의 팬페스트에 참가한 곰스 단장은 커쇼의 복귀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당연하다"면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곰스 단장은 커쇼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며, 재활 상태에 대한 체크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커쇼에 관심이 없다는 일각의 추측을 단칼에 일축했다. 그로부터 이틀도 지나지 않아 커쇼와 계약 소식이 나온 것이다.

다저스와 커쇼는 기본적으로 1+1년 계약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구체적인 금액은 나오지 않았지만 커쇼는 조만간 애리조나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이 계약을 확정할 전망이다. 2025년에는 선수 옵션이 있다. 커쇼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어깨 수술을 받고 현재 재활 중이다. 시즌 중반에야 복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도 다저스는 개의치 않았다. 현재 던질 수 있는 선발 투수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커쇼가 필요하다고 봤다. 단순한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대우와 로망도 있겠지만 팀 전력에서도 커쇼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커쇼가 예전처럼 200이닝을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커쇼는 근래 들어 잦은 부상 탓에 규정이닝도 채우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지난해에도 어깨가 아파 100% 공을 던지지 못했다는 게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의 이야기다. 그 와중에 평균 구속도 90마일(145㎞) 이하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성적은 건재했다. 커쇼는 지난해 24경기에서 131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13승5패 평균자책점 2.46을 기록했다. 최근 두 시즌 동안 부상으로 고전하면서 기록한 합산 평균자책점은 46경기에서 2.37에 불과하다.

지난해 선발 로테이션의 펑크로 고생을 많이 한 다저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의욕적인 선발 보강에 나섰다. 투‧타를 겸업하는 오타니 쇼헤이는 지난 시즌 막판에 받은 팔꿈치 수술로 올해 등판은 불가하지만 2025년부터는 정상적으로 출전이 가능하다. 여기에 투수 최고액을 주고 FA 시장 최고 선발 투수로 평가된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잡았고, 탬파베이와 트레이드로 견실한 우완 투수인 타일러 글래스나우까지 영입했다. 이도 모자라 오프시즌 막판에는 베테랑 좌완 제임스 팩스턴까지 잡아 '6선발'도 가능한 로테이션을 구축했다.

그러나 선발 로테이션이 변수 투성이었다. 야마모토는 일본에서 일주일에 한 번만 던졌다. 메이저리그의 빡빡한 일정에서 관리가 필요했다. 워커 뷸러는 팔꿈치 부상 이후 첫 시즌이고, 사실 글래스나우도 팔꿈치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됐다. 팩스턴은 경력에서 규정이닝 소화가 한 번도 없다. 에밋 쉬헌, 바비 밀러 등 젊은 투수들도 풀타임 성적이 없었다. 예비 자원으로 거론되는 더스틴 메이와 토니 곤솔린도 팔꿈치 수술 재활 중이고, 심지어 오타니도 그렇다. 여기에 새롭게 모인 선수들이 많은 다저스 로테이션에서 커쇼라는 구심점도 필요했다는 게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 월드시리즈 우승팀 텍사스, 왜 류현진과 연계될까

리빌딩을 졸업한 텍사스는 최근 2년간 의욕적인 전력 보강에 나선 끝에 드디어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코리 시거, 마커스 시미언이라는 베테랑들이 앞을 끌고, 재능 있는 젊은 선수들이 뒤를 받친 막강한 타격의 덕을 봤다. 여기에 투수들도 보조를 맞추며 말 그대로 감격의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출 수 있었다. 이제는 이를 지켜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변수가 있다. 타선 전력은 거의 유지가 되고 있는데 마운드 쪽에서 머리가 아프다.

특히 선발 보강이 절실하다. 지난해 트레이드 마감을 앞두고 영입한 조던 몽고메리는 기가 막힌 활약으로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규시즌 후반기에 맹활약했고, 특히 포스트시즌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월드시리즈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몽고메리는 시즌 뒤 FA 자격을 얻어 시장에 나갔다.

여기에 부상자도 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5년 총액 1억8500만 달러를 들여 야심차게 데려온 '건강하다면 지구상 최고의 투수' 제이콥 디그롬은 지난해 시즌 절반도 뛰지 못하고 팔꿈치 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재활 중이다. 올해 중반 복귀가 예정되어 있으나 아무래도 복귀 후 첫 시즌이라 부담감이 많고, 디그롬은 두 번째 토미존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지난해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우승 청부사'로 영입한 맥스 슈어저 또한 시즌 뒤 허리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으며 개막 대기가 불가능하다. 확실한 선발 투수 세 명에 한꺼번에 변수가 닥친 셈이다.

 

 

텍사스 로테이션은 세 선수를 제외해도 선발로 던질 수 있는 선수들이 몇몇 있다. 네이선 이볼디, 앤드루 히니, 데인 더닝, 존 그레이, 타일러 말리 등이다. 이볼디가 지난해 좋은 활약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에이스급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텍사스가 월드시리즈 2연패를 위해 달려가기 위해서는 정규시즌 초반 이 로테이션에 만족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슈어저와 디그롬이 돌아올 때까지 선발이 잘 버텨줘야 하고, 보험이 필요하다. 돌아올 투수가 있는 만큼 그래서 단기 계약 논의가 나오는 것이다. 지난해 복귀 후 투구 퀄리티를 과시한 류현진이 후보가 되는 이유다. 부상 전력이 걸린다고 하지만 텍사스에서 류현진이 160이닝 이상을 던질 필요는 없다.

'스포츠키다'에 앞서 메이저리그 이적시장 소식을 주로 다루는 메이저리그 트레이드 루머스(MLTR) 또한 지난 1월 28일(한국시간) '이러한 물음표를 생각했을 때 팀이 몽고메리와 끈을 유지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면서 '몽고메리가 다른 팀과 계약을 했을 때를 대비해, 그들의 선발 로테이션 뎁스를 강화하기 위해 마이클 클레빈저나 류현진처럼 시장에 남아있는 하위 선발 로테이션의 대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텍사스도 사실 자금 동원이 쉽지는 않다. 팀의 주관 방송사였던 다이아몬드 스포츠 그룹이 파산해 현재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나서 사태를 적극 중재하고 있으나 단시간에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미 거대 유통 기업인 아마존과 스트리밍 계약을 해 당장의 사태 모면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며, 이 때문에 이번 오프시즌 완전히 지갑을 닫았던 텍사스가 다시 시장에 참전해 필요한 선수들을 소액 쇼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커쇼의 다저스 잔류가 류현진의 텍사스 이적이라는 시나리오를 만들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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